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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세이14

성전환자를 배려한 법원의 결정은 비민주적인가? 법관의 지배? ㅤ성전환자의 평등한 지위와 권리를 확인한 2006년 대법원 결정은 그들의 삶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었다. 그 결정은 생물학적 성과 다른 전환된 성을 법률적인 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 경우 호적에 기재된 출생 당시의 성을 그 전환된 성으로 정정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난달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있음을 성별정정의 불허 사유(소극요건)로 판단한 2011년 판례를 뒤집었다.이제 슬하에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자기 정체성에 따라 살아갈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ㅤ그런데 이 결정들에 대해서는 여러 견지에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 비판들 가운데서 특히 강력해 보이는 것은 이 결정이 비민주적이라는 주장이다. 그 주장은 입법자가 사회 변화에 알맞은 새로.. 2023. 4. 6.
성전환자의 삶에 대한 권리 Ⅰ 최근 대법원은 하나의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성전환자가 슬하에 미성년 자녀를 둔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정정할 수 없다는 종전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다수의견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성별 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우려를 들어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반한다고 보아 이를 일률적ㆍ전면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법익 간의 균형을 고려할 때 성전환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미성년 자녀의 실질적 복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 결정은 올해 대법원이 내린 판단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성전환자는 우리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이지만, 모종의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2023. 4. 6.
잠재적 가해자론과 시민적 의무 ㅤ재작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성인지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한 한 동영상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남녀 사이의 불평등을 다루면서 많은 사람이 수용하기 어려운 기이한 논변을 포함했다. 당시 원장이자 강사로 나선 나윤경 교수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청중을 “교육”하고자 했다: 여성의 평균적 경험상 남성을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여길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남성은 자신이 가해자, 곧 음담패설을 일삼는 무뢰한이나 파렴치한 성추행범 같은 부류의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시민적 의무가 있다. “… 의심하면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냐’며 화를 내고, 의심하지 않으면 ‘스스로 성폭력을 자초해서 남성을 곤경에 빠뜨리는 꽃뱀’이라며 비난하죠... 2023. 4. 5.
다수결과 인민에 의한 지배 다수결 전제 ㅤ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민주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이러한 유형의 논쟁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례는 다수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여 법안을 통과하려는 정치적 태도, 곧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입법독주”와 관련이 있다. 올해 민주당이 편법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려 시도하고 실제로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일은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주요 언론사의 평론가들은 이처럼 다수당이 의회에서 의석수로 상징되는 힘의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른 정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것이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비판의 화살이 다수결을 표적으로 삼으면서도,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참된 다수결이란 그 안에 숙의deliberation를 전제한다고 역설한다는 사.. 202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