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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세이14

사과 그리고 양심의 자유 ㅤ근래 유사한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내놓은 판단은 양심의 자유란 무엇인가에 관한 깊은 철학적 고민을 자아낸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설령 헌법 제19조가 명시적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민주적 법치국가의 법질서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존엄성 원칙에 비추어 우리 헌법에서 양심의 자유는 당연히 도출될 것이다. 국제법상으로도 한국이 채택한 자유권규약(이른바 B규약) 제18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양심의 자유를 보편적 인권으로 보고 있다. ㅤ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9조에서 말하는 양심에는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이고 이에 이르지 않아도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 2023. 4. 6.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하는가? ㅤ오늘 국회에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루어진다. 각 정당은 대체로 자기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 제44조 제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으며, 동조 제2항은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신체의 자유를 특정한 공직과 결부하여 권력의 개입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은 통치구조로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의회 내지는 의원의 특권이다. 대의민주제에서 의원들은 형사범죄와 연루되더라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 주로 현행범인이 아니고 회기 중일 때 ― 체포와 구속을 .. 2023. 4. 6.
성희롱과 성평등 그리고 어떤 평등주의 논변 ㅤ코미디언 이경실이 인기 라디오 방송 에서 배우 이제훈에게 했던 발언은 이를 성희롱으로 받아들인 청중들의 심각한 항의에 직면했다. 당시 방송 현장에서 당사자들은 서로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으나, 다수의 청취자는 이경실의 선정적인 발언이 천박하고 무례하다고 비난했으며 누군가는 범죄로까지 여겼다. 논란이 일자 방송사는 해당 방송분의 다시듣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날 이경실은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 의해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 사건에서 대체로 관찰되는 사람들의 반응은 만일 발언의 주체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겨냥한 객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면 발화자가 파국적인 처지에 내몰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이 이러한 반사실적 가정을 통해 시사하고자.. 2023. 4. 6.
헌법관념의 정치적 혼동과 타락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헌법 관념의 정치적 혼동과 타락을 가져오고 있다. ㅤ이틀 전, 국회는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71면 분량의 탄핵소추의결서는 작년 10월 1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와 관련해 그가 주무 부처의 장관으로서 필요한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과 이후 국정조사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사실을 탄핵의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과거 대통령을 대상으로 진행된 두 건의 탄핵심판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탄핵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2개월에서 3개월 내외로 예상된다. 법률가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점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확실히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는 원칙적으로.. 2023. 4. 6.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무슬림에 대한 모욕인가? ㅤ대구시 북구 대현동에서 벌어진 일은 세간의 이목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주민들은 그곳의 인근 부지를 매입해 모스크를 짓고자 했는데, 지역 원주민들은 주거지에 종교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북구청은 주민들로부터 집단적인 민원이 제기되자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건축주는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제소했다. 결과적으로 구청과 주민들은 소송에서 패소했고, 작년 9월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더는 건축 공사에 대한 법적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 방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예배당이 건립되고 있는 공사현장 인근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이었다. .. 2023.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