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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세이

헌법 제1조와 외국인 참정권

by Hershel Layton 2025. 10. 17.

관련 글: 2023.04.07 정주 외국인에 대한 “민주적 지배”

 

정주 외국인에 대한 “민주적 지배”

지배의 정당성과 외국인 ㅤ우리는 민주주의를 논할 때 정당성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켈젠H. Kelsen은 국민주권의 실현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드워킨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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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참정권을 가질 수 있는가? 또한, 참정권을 가져야 하는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외국인의 참정권을 일부 인정하고 있는 국가다. 공직선거법은 영주의 체류자격을 취득하고 3년이 지난 18세 이상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만,[각주:1] 이 조항은 헌법에 합치될 수 있는지 중요한 헌법적 의문을 자아낸다.

1.

ㅤ민주주의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은 전제군주 혹은 귀족이나 외세에 의한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니는데, 이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특성은 자기 지배를 나타내며, 민주주의가 지배의 정당성legitimacy을 확립하는 하나의 방식, 곧 자기 지배의 실현을 통하여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배할 자유를 누리며, 민주주의에 내재된 자유사상은 정치적 권리의 주체와 정치적 지배를 받는 사람을 서로 일치시킬 때 실현될 수 있다.

ㅤ국민주권은 정치공동체의 의사를 결정짓는 최종적인 권력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상이자 원리로서, 국가권력이 국민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정치적 지배에 권위를 부여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다수는 국민주권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nation state를 바탕으로 성립하였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을 구성원으로 하여 국민주권에 입각한 민주적 정치공동체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여 민주주의를 통치형태로 채택하고 있고,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여 국가권력의 근원과 주체가 국민이며, 국민만이 국가의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있다.[각주:2]

ㅤ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참정권은 국민주권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 권리의 하나이며, 다른 기본권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가진다.[각주:3] 특히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선거권은 그 핵심이다. 국민의 참여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그 주권을 행사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주권의 원리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참여를 위하여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에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각주:4] 선거권은 국민주권을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자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필수적 장치일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통제하는 방편이 되고,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헌법상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권리다.[각주:5]

ㅤ요컨대, 선거권을 비롯한 국민의 참정권은 개인으로서 지닌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주관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내리는 고도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주권의 실현에 긴요한 헌법적 의의를 지닌다. 헌법상 주권행사의 본질은 결국 국민 개개인이 갖는 기본권에서 비롯하므로 실질적 주권행사의 기초인 개개인의 참정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은 절대적이다[각주:6]

ㅤ헌법은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 제한 금지(제13조 제2항), 선거권의 법적 보장(제24조), 공무담임권의 법적 보장(제25조),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의 원칙(제41조 제1항, 제67조 제1항),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과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제72조 및 제130조 제2항) 등을 규정하여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참정권은 정치공동체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개인적 유대를 형성하고, 사람들은 집단적 자치를 실현함으로써 어떤 척도에서는 넓은 의미의 정부로서 행위하고 책임을 공유한다. 정치공동체의 운명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그들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하여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정당화한다.

2.

ㅤ선거권자의 국적은 선거권 및 선거제도의 본질상 요청되는 사유에 의한 내재적 제한이다.[각주:7] 선거권은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이자 그 정치공동체의 운명을 공유하는 구성원인 “국민”의 권리다.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는 원칙적으로 선거권의 권리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각주:8]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적이 없는 사람, 가령 외국인에 대하여 선거권을 부여하는 입법은 국민주권주의에 비추어 지극히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도 국민의 선거권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기본권인 것과는 달리, 외국인의 선거권은 단지 “법률상의 권리”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각주:9]

ㅤ국내에서 외국인의 참정권 보장은 일본에서의 재일한국인의 현지 참정권 인정 문제와 맞물려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오다가, 2005. 8. 4.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일부개정법률(법률 제7681호로 ‘공직선거법’으로 개정된 것)에 의해 지방선거권의 형태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러한 입법은 국내에서 먼저 외국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면 상호주의에 의거하여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의 현지 참정권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정책적 의도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다.[각주:10]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오늘날 외국에서 재외한국인의 현지 참정권이 상호주의의 예에 따라 인정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ㅤ외국인의 지방선거권이 도입된 후 처음 실시된 2006. 5. 3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외국인 선거인 수는 6,726명으로 전체 선거인 수의 0.02% 수준이었으나,[각주:11] 이후 점차 증가하여 2022. 6. 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그 수가 127,623명으로 전체 선거인 수의 0.28%로 집계되었다.[각주:12] 서울특별시의 경우 외국인 선거인 수는 2014. 6. 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8,321명, 2018. 6. 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7,923명,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8,035명으로 집계되었다.[각주:13]

3.

ㅤ원칙적으로 헌법상 기본권 주체는 국민이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과 같이 ‘인간의 권리’로서의 성격을 지닌 기본권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경우에도 기본권 주체성이 긍정된다.[각주:14]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참정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인 참정권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 사안을 인권 문제와 결부할 수 있다.

ㅤ헌법 제1조 제2항은 국가권력의 근원과 주체가 국민이며, 국민만이 국가의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각주:15] 이 조항은 국가의 정치적 지배에 있어 지방정부를 포함한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이 갖추어야 할 정당성의 기반이 국민일 것을 보장하고 요구한다. 이에 따라 참정권은 국민주권의 원리가 모든 국가권력에 안정되고 통일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될 수 있도록 국민에게 제한된다. 지방선거권 등 지방자치와 관련된 참정권도 예외가 아닌데, 이는 지방자치의 헌법적 보장이 국민주권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하여 주권의 지역적 주체인 주민에 의한 자기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각주:16]

ㅤ헌재는 참정권이 그 성질상 외국인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기본권이라고 보고 있고,[각주:17] 국민의 지방선거권이 헌법상의 기본권인 것과는 달리 외국인의 지방선거권은 ‘법률상의 권리’에 불과하다고 판시하여 참정권에 대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부인하고 있다.[각주:18] 헌재의 선례는 앞의 법리, 곧 국민주권주의를 전제한 통일적ㆍ체계적 법 해석으로 타당하다. 이처럼 참정권이 국민의 고유한 권리라는 법 해석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개념적 이해, 국민주권과 참정권의 관계, 참정권이 지닌 헌법적 의의 등의 논거에 기초한 것으로, 외국인에 대한 존엄성의 부정이나 불합리한 차별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그에 기초한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의무와 상충되지 않는다.

ㅤ자아실현과 자기결정이라는 인격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참정권은 인권의 범주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참정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보는 데에는 앞의 법리적 이유 외에도 분명한 한계선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권위주의 내지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나라에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하고 조직적ㆍ체계적으로 수행되는 정치적 박해로 말미암아 정치활동의 자유를 전혀 누릴 수 없다. 이 경우 해당 국가의 국민은 자국 정부로부터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타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령 재한외국인이 한국의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외국인에게 정치적 박해를 가한다거나 외국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ㅤ외국인이 한국 정부로부터 참정권을 보장받더라도, 해당 권리는 그가 속한 정치공동체, 곧 국적을 둔 나라와 무관하다. 일반적으로 외국인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참정권 보장을 유의미하게 할 만한 어떠한 유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자국은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국가의 존망이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각각 미치는 영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과 자기결정이 가능한 것은 공동체와 구성원이 서로 정치적 운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정권의 본질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자기 지배의 성취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치self-governance라는 공동의 과업에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즉, 민주주의에 내재된 적극적 의미의 자유는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때 얻을 수 있다. 참정권의 본질은 현실적ㆍ이론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지위와 분리하여 이해될 수 없다.

4.

ㅤ표면적으로는 재한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정책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자치를 진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은 지배의 정당성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권력이 그 지배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정당화될 것을 요구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 외에 구성원의 자기 지배를 구현함으로써 정치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정치적 권리의 주체와 정치권력의 피지배자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자유사상, 이른바 적극적 자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ㅤ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공동체를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계기로 우연히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법ㆍ정치ㆍ문화ㆍ역사 등 다양한 배경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강하게 결속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인민에 의한 지배rule of the people”를 의미하는데, 그 “인민”이 누구인가는 민주주의에 선행되는 문제다. 인민, 곧 지배의 객체인 동시에 주체인 사람들의 집단은 민주주의에 전제된 요소이므로 이것의 개념 자체를 정의하는 일에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ㅤ일부 학자들은 사람들을 각각의 공동체로 구분 짓는 기준이 언어, 풍습, 종교 등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왔다고 기술하지만, 그 대표격인 “민족”은 여전히 경계가 모호한 개념이다. 그렇지만 헌법은 이 점을 법적 기준으로 명확히 하였다.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헌법은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제정권력인 “대한국민”을 명시한 전문(前文)과 국민주권주의를 규정한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에 관한 제2조 제2항을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그 국민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ㅤ헌법은 민주주의 등 제반 원리를 포함하여 그 규범력이 미치는 정치공동체로 대한민국을 전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조 제1항 및 관계 법률인 「국적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정치공동체로, 우리 헌정질서가 존속하고 유지되는 공간적 배경이다. 하지만 외국은 그 대상이 아니며, 외국인은 헌법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정치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다. 외국인은 단지 국제법상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와 있는 경우에만 우리나라의 통제를 받을 뿐이다.

ㅤ이처럼 국민과 외국인에게 지배에 대한 복종의 의미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수용된다. 국민의 경우, 그들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이 내린 의사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내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 곧 개인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차별받는 사람에게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공정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서양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흑인과 여성이 참정권을 제한받던 시기의 법질서와 국가권력의 행사는 흑인과 여성의 자기 지배를 의미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당성을 훼손한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는 다르다. 만일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불법을 자행한 외국인이 한국 정부의 경찰력 행사와 법 집행에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고 항변한다면 우리는 그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여길 것이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 있는 외국인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복종할 의무가 있지만, 이 의무는 민주적 정당성과는 무관하다.

ㅤ정주 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가 자치를 고양한다는 견해도 진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외국인의 참정권이 그 개인에게 집단적 자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기초적인 권리로서의 의의를 지니려면 스스로도 자신을 진지하게 공동체의 정치적ㆍ도덕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 나라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보장받지만, 그들 자신이 법적으로 종속된 국가와는 구분되는 다른 정치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퀘벡의 분리주의자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다른 이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항상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사례는 자신을 진지하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집단적 자치가 빈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ㅤ재한외국인은 국적 대신 영주권을 취득하여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이 선택이 정확히 그들의 심중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수수께끼다. 다만 외국인 중에는 한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국인처럼 개인적ㆍ사회적으로 공동체와 깊은 유대를 맺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그가 우리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치라는 공동의 과업에 동참하는 것을 허용하려면, 헌법의 틀 안에서 가능한 해법은 입법자가 사안에 알맞게 「국적법」을 개정하거나 당사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뿐이다. 특히 입법자는 헌법이 허용하는 입법형성권의 재량 범위 안에서 적절한 「국적법」 규정을 통하여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ㅤ다른 한편,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면 지배의 정당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견해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치규범에 반할 수 있다.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는 이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설령 강제 합병된 나라의 구성원에게 본국 국민과 동등한 수준의 참정권이 부여되었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참정권을 병탄의 증거로 여기지 정당성의 근거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논의 속에서 외국인의 참정권이 그런 침략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확장과 정당성 확보를 꾀할 수 있다는 관점은 대개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해당 국가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며, 외국인 개인의 의사나 외국인이 속한 타국의 (그 외국인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무시하는 것이다.

ㅤ특히 한국은 외국인 참정권의 인정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유럽의 경우와 결이 다르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각 국가의 지방자치 수준에서 회원국 국적을 보유한 외국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의 국가들이 조약을 체결해 유럽공동체를 구성하고 유럽연합의 시민권을 확립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각주:19] 즉, 유럽지역에서 외국인 참정권의 정당화는 국가 단위의 정치공동체를 초월한 “유럽”이라는 공동체 인식 아래에서 국가 간의 자유롭고 적법한 합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외국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5.

ㅤ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공권력 행사의 형태 그리고 침해된 기본권의 성질과 내용을 통해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참정권은 국민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서 방해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입후보하거나 투표할 수 있는 것을 내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참정권의 본질은 단순히 그러한 기본권 행사의 태양(態樣)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를 보유하고 행사하여 얻어지는 헌법상 이익과 그것이 헌법적으로 왜 중요한가를 고찰함으로써 해명될 것이다.

ㅤ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이른바 “객관규범”으로부터 곧바로 국민의 기본권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각주:20] 그렇다고 해서 “주관규범”에 해당하는 기본권이 객관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그 내용을 형성하는 것까지 방해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자는 서로 분리된 법질서가 아니라 통일성integrity을 갖춘 법질서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헌재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권력, 인권, 주권, 자유의 문제는 고리와 같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문제이지 각각 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각주:21] 특히 그 내용의 구체화가 필요한 어떤 기본권이 특정한 헌법 원리와의 관계 속에서 헌법해석의 최종적 권위를 가진 기관에 의해 꾸준히 반복적으로 해명되어왔다면 양자의 관련성은 실증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ㅤ참정권의 의의가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와 관련지어 해명되어왔음은 선거제도에 관한 종래 헌재의 판례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헌법의 해석을 통해 묘사되는 참정권의 모습은 국민의 자기 지배 실현에 필요한 기본권이자 주권행사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이다. 법률과 유권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참정권의 내용은 언제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의 이상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가를 척도로 판단되어왔고, 이를 형해화거나 가로막는 제한 입법은 위헌적인 것으로서 거부되었다. 민주주의나 국민주권주의와 단절된 상태로 참정권이 그 의의를 발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참정권은 헌법이 이를 보장한 궁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난 것으로, 존재 의의를 잃고 공허한 권리가 될 것이다.

ㅤ따라서 참정권의 내용은 주권자인 국민이 국정에 관한 공동체의 고유한 의사를 형성할 자유를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은 한편으로 참정권이 왜 그 성질상 국민에게 제한되는가를 설명한다. 국민이 아닌 사람이 공동체의 의사가 형성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면 선거나 투표를 거쳐 결정된 최종적인 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 의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헌법이 요구하는 참정권의 “보장”은 해당 기본권을 국민에게 배타적ㆍ독점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아닌 유권자 집단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고유한 의사를 형성할 수 없다.

ㅤ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그 주권을 행사하는 통로이므로 선거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원리 나아가 국민주권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각주:22] 그런데 이 조항에 의해 외국인의 선거권이 인정된 법제하에서는 선거를 통해 반영되는 것이 국민의 의사인지 모호해진다.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지 불분명한 선거에서 국민이 지닌 선거권의 가치는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한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것보다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외국인 선거인 수가 내국인 선거인 수보다 적다거나 전체 선거인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려를 불식하기에 부족하다. 선거는 단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등 변수가 너무 많다.

ㅤ물론 참정권 침해가 순전히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 감소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참정권으로 누릴 수 있는 헌법상의 특별한 이익은 그보다 더 심대하고 근본적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강조할 점은 내가 기본권 침해의 내용으로 주장하는 바가 정치적 자유의 훼손을 의미하지 정치적 영향력의 훼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향력을 척도로 참정권의 권익이 측정된다면, 그러한 이익은 개인에게 너무 작아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실제로 내가 1표를 행사함으로써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미미하다. 하지만 참정권을 통해 누리는 특별한 이익을 앞에서 본 자유, 곧 민주주의에 내재된 자유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면 법적 평가는 달라진다. 내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사하는 참정권은 최종적으로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민의 자기 지배를 가능하게 하며, 나는 개인적 삶에 있어서 법ㆍ제도ㆍ권력행사 등의 형태로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누리는 자유란 구성원 공동의 정치적 자기 지배를 의미한다.

ㅤ요컨대, 국정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자유”는 개인으로서 누리는 자유(간섭 없는 자유로운 투표행위 등) 외에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자유(공동체의 운명 결정, 집단적 자치 등)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공동체 외부인, 곧 외국인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면 그만큼 공동체의 진정한 구성원인 국민이 그들 스스로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는 손상된다. 외국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선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정치적 지배는 국민에게 있어 더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자기 지배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자주적 독립성을 약화한다는 우려에서 그치지 않고, 대내적으로 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의 의구심을 촉발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여, 외국인이 투표할 수 있는 선거로 창출된 권력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의 문언에 반하며 그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기관은 엄밀한 의미에서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ㅤ이 조항은 위와 같은 자유의 훼손 외에도 평등이념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 외국인의 참정권과 국민의 참정권은 평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국민은 대한민국에 법적ㆍ정치적으로 종속되어있는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를 감수해야 하지만, 외국인은 그런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자신의 국적을 이유로 대한민국에서의 거주를 종료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의사결정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국민은 그 외국인이 속한 타국에서 참정권을 가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외국인 참정권 도입이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유권자 계층을 형성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과 관련된 문제를 야기하며, 결과에 무책임한 유권자의 존재는 책임 있는 유권자로 하여금 자기 지배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6.

A.

ㅤ헌법 제1조 제2항은 국가권력의 근원과 주체가 국민이며, 국민만이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있는바,[각주:23] 이 조항은 모든 국가권력이 갖추어야 할 정당성의 기반이 국민일 것을 보장하고 요구하므로, 국민주권주의가 모든 국가권력에 안정되고 통일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도록 참정권이 국민에게 제한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참정권은 그 성질상 외국인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기본권이며,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는 참정권의 권리 주체가 될 수 없다.[각주:24]

ㅤ그런데 이 조항은 이러한 헌법 원리에 반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외국인의 지방선거권이 헌법상 기본권이 아닌 법률상의 권리라 하더라도 그 권리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법적ㆍ사실적 효과는 기본권인 선거권과 차이가 없고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의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헌법 제1조 제2항과 모순되는 상황이며 국민주권을 통한 국가권력의 정당화에 지장을 초래한다.

ㅤ따라서 이 조항은 국민주권주의에 위반한다.

B.

ㅤ이 조항은 그 입법 배경과 취지를 고려할 때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여 한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그들이 지역주민으로서 지역공동체의 기초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규범적 확장과 지역사회의 통합에 기여하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상호주의를 통한 재외한국인의 현지 참정권 보장을 목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외국인의 지방선거권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민주권주의에 중대한 예외를 두는 것이며 국민이 지닌 주권자로서의 지위와 참정권에 일정한 양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ㅤ이처럼 이 조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을 수반하므로 다른 여하한 법률과 마찬가지로 비례원칙을 준수하였는지 검토되어야 한다.[각주:25]

a.

ㅤ비례의 원칙상 수단의 적합성 요건은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사용된 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한 수단일 것을 요구한다.[각주:26] 수단의 적합성으로 심사하는 내용은 입법자가 선택한 방법이 최적의 것이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고, 그 방법이 입법목적의 달성에 유효한 수단인가 하는 점에 한정된다.[각주:27] 하지만 단지 유효한 수단이라고 해서 곧바로 적합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어떤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헌법이념과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 전체 법체계와 저촉된다면 적정한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각주:28] 요컨대, 그 수단은 전체 법체계의 기본질서 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ㅤ국민주권주의는 헌법의 연혁적ㆍ이념적 기초로서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에서 기준으로 작용하고,[각주:29] 헌법상 참정권의 가치와 중요성, 선거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러한 국민주권주의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해명되어왔다. 이러한 점은 종래 헌재의 판례에서도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주권주의와 모순되는 내용으로 우리 법체계와 조화될 수 없다.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가와 무관하게,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위헌적 수단은 적합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ㅤ따라서 이 조항은 수단의 적합성에 위반한다.

b.

ㅤ입법에 의하여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형량할 때 보호되는 공익이 더 커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는 법익의 균형성에 위반된다.[각주:30] 이 조항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주된 이익은 법률상 조건을 충족한 소수의 외국인만이 향유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사회통합이라든가 상호주의에 기반한 재외한국인의 처우 개선 등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이익 내지는 부차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헌법의 근간이 되는 원리인 국민주권주의에 예외를 두면서까지 추구되어야 할 중대한 공익이라고 보기 어렵고, 국민이 주권자의 지위에서 참정권을 통해 실질적 주권을 행사하고 자기 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헌법적 이익과 비교하여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다.

ㅤ따라서 이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 위반한다.

C.

ㅤ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각주:31] 여기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만약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기본권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는 기본권의 근본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개별 기본권마다 다를 수 있다.[각주:32] 어떤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이 유명무실해지고 형해화되어 헌법이 해당 기본권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는 기본권 제한 입법의 한계를 일탈하여 위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ㅤ어떤 기본권의 근본요소가 무엇인지는 해당 기본권의 내용, 다른 기본권과 구분될 수 있는 고유한 성질, 헌법이 이를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 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전술하였듯이 법률과 유권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참정권의 내용은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가를 척도로 판단되어왔고, 이를 형해화하거나 가로막는 제한 입법은 위헌적인 것으로서 거부되었다. 다른 기본권과 구별되는 참정권의 고유성은 공동체와 구성원을 매개하고 주권행사에 기초가 되며 자기 지배를 실현하는 힘에 있다. 헌법이 참정권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추상적ㆍ상징적 지위에서 해방시켜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

ㅤ그런데 이 조항은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일부 인정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예외를 설정하고 있다. 외국인의 참정권이 인정된 이상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은 더는 국민에게 전속되지 않다. 이 경우 선거를 통하여 형성된 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 고유한 의사가 아니게 되고, 그 의사로 창출된 권력의 지배는 국민의 자기 지배로 볼 수 없다. 헌법상 참정권의 의의는 국민의 자기 지배에 필요한 기본권이자 주권행사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으로서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 있다. 참정권 보장의 궁극적인 목적인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유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참정권의 근본요소에 대한 제한이다.

ㅤ결국 이 조항은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원칙에 위반한다

D.

ㅤ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은 입법과 법의 적용에 있어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상대적 평등을 의미하고, 따라서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이나 불평등은 이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각주:33] 이처럼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된 헌법상 평등은 특정한 비교상황에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라”라는 내용으로 정립된다. 평등원칙은 입법자에게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비교의 대상을 이루는 두 개의 사실관계 사이에 서로 같은 취급을 정당화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데도 양자를 서로 같게 취급한다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각주:34]

ㅤ앞서 나는 외국인 참정권 도입이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유권자 계층을 형성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민은 법적ㆍ정치적으로 대한민국에 종속되어있기에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따른 결과를 감수해야 하지만, 외국인은 그렇지 않다. 외국인은 언제든 대한민국에서의 거주를 종료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설령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더라도 현지 정치 상황으로부터 자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를 받는다. 또한,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헌법상의 의무를 지고 있다. 반면에 외국인은 그런 의무가 없다. 외국인 유권자는 우리 정치공동체를 위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데도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와 같은 선거권을 갖는다. 물론 국민의 기본권이 헌법상 의무에 대한 반대급부인 것은 아니나,[각주:35] 국적에 따른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 유권자의 존재는 그렇지 않은 내국인 유권자를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지위로 격하시킨다. 외국인이 그런 의무를 지지 않는 까닭은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지 않아서다.

ㅤ이렇듯 참정권을 보장하는 상황에 있어서 외국인과 국민은 본질적으로 다른 지위에 있으므로 서로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 법리적으로 국민의 지방선거권은 헌법 제24조에 의해 보호받는 기본권이고 외국인의 지방선거권은 법률상으로만 인정되는 권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각주:36] 선거 결과에 미치는 법적ㆍ사실적 효과의 측면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즉, 각 권리가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의사를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실질적으로 동등하다. 그러므로 이 조항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실질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문제가 있다.

ㅤ차별취급의 존재가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문제시될 때 그것의 자의성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은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의 존재다.[각주:37] 이 조항은 그러한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애당초 참정권은 그 성질상 외국인에게 인정되지 않는 기본권이며, 이처럼 성질상의 제한을 받는 기본권에 관하여 외국인이 평등권을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각주:38] 그렇다면 평등원칙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에게 지방선거권이 있다고 해서 외국인에게도 같은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ㅤ이 조항이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함으로써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특히 이 조항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재외한국인의 현지 참정권 보장을 목적하는 취지가 있지만, 이는 국내법이므로 외국 정부에 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자국 내 외국인의 현지 참정권 보장에 관한 상호주의가 국제법상 강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목적의 성취 여부는 오로지 재외한국인이 거주하는 외국 정부의 호혜적 태도에 달려있다. 현 상황을 보면 재외한국인의 현지 참정권이 인정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상호주의의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일당독재국가나 전제군주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참정권과 유사한 형태의 어떤 권리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관련 국가의 헌법이 외국인의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거나 제한할 수도 있다.[각주:39] 이러한 유형의 국가에 거주하는 재외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상호주의를 기대할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있다.

ㅤ결국 이 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위반한다.

 

*이 글은 2025. 10. 16.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서 내용을 옮긴 것이다.

 

Oct 17, 2025

 

*대표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Republic of Korea National Election Commission 3(by 최광모)

 

  1. 제15조(선거권) ① 생략1~2. 생략
    ② 18세 이상으로서 제37조제1항에 따른 선거인명부작성기준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 구역에서 선거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권이 있다.
    1~2. 생략
    3. 「출입국관리법」 제10조에 따른 영주의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으로서 같은 법 제34조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올라 있는 사람 [본문으로]
  2. 헌재 2025. 4. 4. 2024헌나8, 판례집 37-1, 268, 329 [본문으로]
  3. 헌재 1989. 9. 8. 88헌가6, 판례집 1, 199, 208 [본문으로]
  4. 헌재 2018. 1. 25. 2015헌마821등, 판례집 30-1상, 111, 122 [본문으로]
  5. 헌재 2007. 6. 28. 2005헌마772, 판례집 19-1, 899, 906 참조 [본문으로]
  6. 헌재 1989. 9. 8. 88헌가6, 판례집 1, 199, 209 참조 [본문으로]
  7. 헌재 1999. 1. 28. 97헌마253등, 판례집 11-1, 54, 60 참조 [본문으로]
  8. 헌재 2010. 11. 2. 2010헌마626, 결정문, 2 참조 [본문으로]
  9. 헌재 2007. 6. 28. 2004헌마644등, 판례집 19-1, 859, 883; 2016. 10. 27. 2014헌마797, 판례집 28-2상, 763, 771 참조 [본문으로]
  10. 김수정ㆍ박태균, “한국의 외국인 지방선거 참정권 도입의 역사와 현황”, 국제ㆍ지역연구, 제32권 제2호 (2023. 여름호), 180면 이하 참조. DOI: 10.56115/RIAS.2023.06.32.2.171 [본문으로]
  11. 2006. 5. 2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도자료, 「5ㆍ31지방선거 선거인 3,706만 4,282명 확정」 [본문으로]
  12. 2022. 5. 2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도자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유권자 총 44,303,449명 확정」 [본문으로]
  13. 앞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도자료들 참조 [본문으로]
  14. 헌재 2001. 11. 29. 99헌마494, 판례집 13-2, 714, 724 참조 [본문으로]
  15. 헌재 2025. 4. 4. 2024헌나8, 판례집 37-1, 268, 329 참조 [본문으로]
  16. 헌재 2019. 8. 29. 2018헌마129 판례집 31-2상, 218, 224 참조 [본문으로]
  17. 헌재 2014. 4. 24. 2011헌마474등, 판례집 26-1하, 117, 124 [본문으로]
  18. 헌재 2007. 6. 28. 2004헌마644등, 판례집 19-1, 859, 883 [본문으로]
  19. 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2016] OJ C 202/47, art 20 [본문으로]
  20. 헌재 2008. 11. 27. 2008헌마517, 판례집 20-2하, 509, 516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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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헌재 2001. 7. 19. 2000헌마91등, 판례집 13-2, 77, 93 참조 [본문으로]
  23. 헌재 2025. 4. 4. 2024헌나8, 공보 343, 468, 497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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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헌법 제37조 제2항 전단 [본문으로]
  26. 헌재 1992. 12. 24. 92헌가8, 판례집 4, 853, 878 참조 [본문으로]
  27. 헌재 2006. 6. 29. 2002헌바80등, 판례집 18-1하, 196, 207 참조 [본문으로]
  28. 헌재 1999. 12. 23. 98헌바33, 판례집 11-2, 732, 752; 1999. 12. 23. 98헌마363, 판례집 11-2, 770, 790 [본문으로]
  29. 헌재 2008. 11. 27. 2008헌마517, 판례집 20-2하, 509, 516 참조 [본문으로]
  30. 헌재 1992. 12. 24. 92헌가8, 판례집 4, 853, 878 참조 [본문으로]
  31. 헌법 제37조 제2항 후단 [본문으로]
  32. 헌재 1995. 4. 20. 92헌바29, 판례집 7-1, 499, 509; 2003. 12. 18. 2001헌바91등, 판례집 15-2하, 406, 417 참조 [본문으로]
  33. 헌재 1998. 9. 30. 98헌가7등, 판례집 10-2, 484, 504 참조 [본문으로]
  34. 헌재 1996. 12. 26. 96헌가18, 판례집 8-2, 680, 701; 2012. 10. 25. 2011헌마789, 판례집 24-2하, 84, 92 참조 [본문으로]
  35. 헌재 2007. 6. 28. 2004헌마644등, 판례집 19-1, 859, 878 참조 [본문으로]
  36. 헌재 2007. 6. 28. 2004헌마644등, 판례집 19-1, 859, 883; 2016. 10. 27. 2014헌마797, 판례집 28-2상, 763, 771 참조 [본문으로]
  37. 헌재 2003. 1. 30. 2001헌바64, 판례집 15-1, 48, 59 참조 [본문으로]
  38. 헌재 2014. 4. 24. 2011헌마474등, 판례집 26-1하, 117, 124 참조 [본문으로]
  39. 가령 독일의 경우, BVerfGE 83, 37, 50ff 참조. 독일에서는 일부 외국인에게 기초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와 크라이스(Kreis)에서의 선거권을 부여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의 선거법에 대하여 1990년 연방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였고, 이후 1992년 기본법 개정으로 유럽공동체 회원국 국적자에 한정하여 지역자치선거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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