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1시까지 약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헌정질서 중단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그것은 명백한 내란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강변했다.1 하지만 헌법은 계엄선포의 요건을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2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는, 이를테면 외적의 침입, 대규모의 폭동, 거대한 지진 혹은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를 고려할 수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정치적 공세와 반대는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 문제는 정치로 풀어내야 할 사안이며, 그것의 해결에 군사적 수단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이 발언권과 결정권을 장악하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미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실체적ㆍ절차적 요건을 결여하여 위법하고 무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3
ㅤ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은 단지 비상계엄 선포가 법을 위반하여 효력을 지닐 수 없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확신하고 있듯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형법상 내란의 일환으로 수행된 폭동이었다. 전 국민은 그날 뉴스 라이브 방송을 통해 군경이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거부한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누군가 1979년 12월 12일의 쿠데타를 다시 떠올렸다면 그러한 회고는 우연이 아니다. 대법원은 국헌문란의 목적을 지닌 자에 의해 선포된 비상계엄의 폭동성에 대해 판시한 바 있다.4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ㅤ내란죄의 구성요건 요소인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은, 형법의 정의에 따르면,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혹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기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5 이러한 목적이 있었는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6 우리는 비상계엄이 국회를 겨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한 포고령 제1호는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헌법상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으로 한정된다.7 즉, 국회와 정당의 활동은 특별조치의 대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를 금지한 것은 위법무효이다.8 계엄사령부에서 포고령을 하달한 이후 군대와 경찰, 관료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된 상황은 위 계엄포고령이 어떤 법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기보다는 정략(征略)적인 군사상의 계획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ㅤ대통령이 국회를 무력으로써 쳐부숴야 할 “적”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병력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했을 무렵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9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도 동일한 내용으로 증언했다. 긴박했던 순간 그는 상부로부터 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고 그것이 안 되면 전기를 끊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10 내란에는 정보기관도 동원되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정리해”라는 말과 함께 국군방첩사령부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홍 차장이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하자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었다. 그 명단에는 여당과 야당의 대표, 국회의장, 국회의원, 일부 언론인과 시민단체 대표 그리고 전직 대법관의 이름이 올라있었다.11 국회에서 촬영된 CCTV와 목격자의 증언 등 여러 정황은 실제 체포조가 존재하고 운영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12 비상계엄이 해제된 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 항의했을 때 대통령은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령을 언급하며 계엄군의 행위를 두둔했다.13
ㅤ이러한 사실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이들이 계엄포고령으로 정치활동을 금지한 다음, 동 포고령 위반을 명분으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의 조항을 무력화함으로써 비상계엄에 반대하거나 그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을 현행범인으로 체포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이렇게 합리적으로 소명되는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종국에는 계엄해제권을 지닌 국회의 헌법적 권한이 침탈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를 대상으로 경찰기동대와 무장병력을 동원하는 “강압에 의하여” 입법 및 계엄해제요구 등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국헌문란의 사태가 도래하였을 것이다. 이는 부당하게 비상계엄이 선포된 비정상적인 상황 아래에서 결코 무리한 상상력이 아니다. 헌정질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공간 안에서 발생한 어두운 균열과 현실권력의 초법적인 침습(侵襲)은 법에 의해 보호되는 사회생활의 안정을 흔들고 일상의 평온한 사고의 흐름을 정상의 범주에서 이탈시킨다.
ㅤ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법치주의에 흠집을 내는 것 이상의 해악을 지닌다. 법의 통제를 벗어난 정부 권력이 구성원의 권리를 침해할 때 지배의 정당성legitimacy은 손상된다. 특히 권리에 대한 위협과 압제가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이들을 제압하거나 숙청하기 위한 것이라면 정당성의 손상은 치명적이다. 그 목적은 반대편에 선 자를 정치공동체의 도덕적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겠다는 뜻이며, 그 끝에 놓인 극단적인 결말은 우리 인류가 참을 수 없는 비극적이고 악랄한 범죄다. 그러한 지배는 법에도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테러terrorism에 불과하다. 우리는 광의의 정부가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불가분하고 불가침한 원칙, 곧 정부는 그 지배 아래에 있는 모든 구성원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유념해야 한다. 이 원칙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이 폐기되었을 때, 법의 지배는 테러의 지배로 대체될 것이다.
ㅤ그러나 어쩌면, 비상계엄보다 더한 악몽은 모두가 당연히 가결되리라 기대했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투표 불성립으로 사실상 부결되었다는 사실이다.14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 가운데 표결에 참여한 사람은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 세 사람 뿐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향한 힘찬 발걸음이 고작 정파적 이익에 가로막히는 것은 비극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란 시도보다 훨씬 나쁠 수 있다. 탄핵소추안에 대한 반대 당론과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46조 제2항 사이의 간극은 우리에게 또 다른 헌법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한편, 의외로 언론과 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처음 탄핵을 찬성했던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일부 여당 의원들의 극적인 입장 선회는 12월 7일 탄핵안 표결 전 발표된 대통령의 담화문에 기초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의 임기를 포함하여 향후 정국 안정화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15 민주주의란 인민에 의한 지배rule by the people이며, 그 필요조건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전제다. 대통령의 이 같은 위임은 헌법상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심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를 정하는 것은 헌법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다. 특정 정파가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것은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방식이 아니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은 당리당략에 따른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 곧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으로 파면되거나 내란죄로 법원의 유죄판결을 확정받아 당연퇴직하는 것이다.
Dec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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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원고 작성을 마친 이튿날, 언론에서는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여당에 일임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이 헌법에 위반되는가를 주요한 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일치했다. 법적으로 사고나 궐위 상태에 있지 않은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그 권한을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위임받아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다.16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했지만, 정확히 그가 추구하는 “질서”는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우리가 탄핵으로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함이라면, 이미 국정 안정화 방안의 청사진을 담은 대국민 담화가 수많은 논쟁거리만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질서”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혼돈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예측 불가한 권력자 때문에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지의 영역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확실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Dec 9, 2024
ㅤ이 글은 개인적인 사정상 비공개로 유지하다가, 2025년 10월 7일 공개로 전환하였다.
Oct 17, 2025
*대표이미지 출처: 대한민국 국회
- 정봉오, “尹, 비상계엄 선포…“민주당, 내란 획책…종북 척결, 헌정질서 지키겠다”,” 동아일보 (2024년 12월 4일) [본문으로]
-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1항; 계엄법 제2조 제2항 [본문으로]
- 박수연, “한국법학교수회, "비상계엄 선포·후속조치, 위헌·위법",” 법률신문 (2024년 12월 5일); 대한변호사협회, ““[성명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하라,” 제52-22호(2024년 12월 3일) [본문으로]
-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집45(1)형, 1; 공1997. 5. 1. (33), 1303 [본문으로]
- 형법 제91조 [본문으로]
- 대법원 판례, 주4 [본문으로]
-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3항 [본문으로]
- 합동참모본부에서 발간한 『계엄실무편람』에도 계엄사령관은 입법권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명시되어있다. 합동참모본부, 『계엄실무편람』(2023), 33면 [본문으로]
- 한혜원ㆍ임형섭ㆍ계승현, “특전사령관 "장관이 '의원 끌어내라'…위법이라 지키지 않아"(종합),” 연합뉴스 (2024년 12월 6일) [본문으로]
- 유호윤, “"전기 끊어서라도 표결 막으라고 했다"…현장 지휘 여단장이 밝힌 '그날 밤',” KBS (2024년 12월 7일) [본문으로]
- 신규진ㆍ고도예ㆍ김지현, “"우원식-한동훈-이재명 등 13명 체포 명단 불러, 미친×라 생각",” 동아일보 (2024년 12월 7일), A2면 [본문으로]
- 박세인, “한동훈 이재명 노린 계엄군 ‘체포조’… 방첩사 ‘과천 수감장’으로 끌고 가려 했나",” 한국일보 (2024년 12월 6일) [본문으로]
- 양지혜, “한동훈, 계엄군 '체포조' 강력 항의… 尹 "포고령 위반이니 그랬을 것",” 조선일보 (2024년 12월 5일) [본문으로]
- 김지현ㆍ이승우, “尹 탄핵안 폐기…與 보이콧에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동아일보 (2024년 12월 7일) [본문으로]
- 김현빈, “윤 대통령 "진심으로 사과... 임기 포함 정국 안정 방안 당에 일임",” 한국일보 (2024년 12월 7일) [본문으로]
- 유선희ㆍ김나현, “법조계, 대통령 권한 ‘당에 일임’·여당 표결 방해 “위헌성 있다”,” 경향신문 (2024년 12월 8일), A8면.
김승대 교수는 대통령이 국정 운영 능력을 상실하였으므로 이를 “사고”로 보아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고 본다. 고도예ㆍ황현준, “법적근거도 명분도 없이 “국정 공동운영” 언급한 한동훈,” 동아일보 (2024년 12월 8일) 기사 인터뷰 참조. 그러나 현재 윤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사고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대통령도 국정을 운영할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사유로 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는 없듯이, 정치적으로 곤란하고 불리한 처지를 사고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 이후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재가하여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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