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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세이

탈식민주의와 국제법학

by Hershel Layton 2023. 4. 6.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어느덧 8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과거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은 듯하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적 침략의 일환으로 수행된 강제동원과 그 배상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법적 공방은 오랜 전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반대자들은 이웃나라인 일본 그리고 동맹인 미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거론하는 것 외에도 국제법까지 들먹이면서 대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들은 평소 자유민주주의의 교리를 설파하고 다녔던 것과는 달리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다. 개인을 희생시켜 공동체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하는 국가주의의 환상은 바로 그 맥락에서 구현된다. 만약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국가폭력의 희생자에게 애국심을 갖고 자중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참혹하고 변태적인 일이 될 것이다.

ㅤ이러한 점에서 최근 행정부가 내놓은 “미래지향적 결단”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고 있다.[각주:1] 윤석열 대통령이 그간 보여왔던 언행을 미루어보아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밑바닥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비위가 약한 이들에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불쾌감을 넘어서 해롭기까지하다. 윤석열과 그를 대변하는 외교부 주장의 요지는 피해자가 국가의 장래와 불분명한 어떤 이익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책임추궁 없이 금전적 원조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돈은 과거 한일협정에 의한 청구권자금의 수혜자로 지목된 일부 한국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마련될 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배상금을 일본기업 대신 변제할 목적으로 집행된다. 사실 모금이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기이한데, 행정부의 독단적이고 일방적 선언은 기업에게 무언의 정치적 압력을 의미할 뿐이다.[각주:2]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첨예한 대립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병합해 식민지로 지배했던 사실을 법적으로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비롯한다. 한국은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이 무효이며, 이에 따라 식민지배 역시 불법이고 한반도에서 시행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유효한 법규범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각주:3] 반면에 일본은 그것과 정반대로 생각한다: 한일병합조약은 유효한 법이므로 식민지배 하에서 이루어진 징용은 적법하다. 이 같은 양국의 상이한 규범적 인식은 단순히 역사적 관심을 환기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주의를 촉구한다. 특히 한국은 헌법의 토대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짓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이 사안은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이때 정체성은 흔히 편협한 의미로 일컬어지는 민족성ethnicity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주권과 지배규범을 확립하는 내적 인식을 가리키며, 정치동공체 구성원이 그들의 고유한 통치질서를 수립하고 그들 공동체의 자주적 독립성을 보존하기 위한 핵심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대한민국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결정짓는 정치도덕적 요소다.[각주:4] 만일 한국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일제의 식민지배가 유효하고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자멸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타국에 대해 그들의 국권을 빼앗거나 배제하고 식민지화하는 일이 제국주의 시대의 “문명국가”들 사이에서 흔한 국제적 관행이었기 때문에 세계의 역사가 정의와 인도를 향해 진일보한 발전을 거듭했다고 한들 현재의 기준으로 죄책을 추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서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후 독일의 연방대법원은 나치체제 아래에서 사법살인에 가담한 판사들을 다음과 같은 논리로 면죄했다: 당시 유효한 법이 지금에 와서 불법이 될 수 없다.[각주:5] 그들은 악행을 단죄할 법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악행이 유효한 법에 근거했기 때문에 최소한 법적으로는 정당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장에 전제된 가정을 쟁점으로 삼고자 한다: 그것은 정말 실재하는 유효한 법이었는가?

ㅤ식민지배로 이익을 보았던 과거 제국주의 열강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이를테면, 유럽은 그들에 의해 식민지배를 겪었던 아프리카와 중미 카리브해 국가들의 압력에 직면했다.[각주:6] 이들 국가는 단지 오래 전 약탈당한 몇몇 유물을 돌려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서양 박물관에 전시된 항아리와 보검은 침략자의 부끄러운 죄악을 상징하지만, 확실히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국제적으로 인권과 주권에 관한 원칙을 수용하고 옹호하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과는 달리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과거사 참회의 모범적 사례로 알려진 독일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배상금을 지급했다. 반면에 20세기 초반 서남아프리카(現 나미비아)에서 그들이 자행한 제노사이드[각주:7]를 대할 때는 배상repar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기피하고, 그 대신 경제적 원조aid를 약속했다. 그러한 “후원”은 학살의 원인으로 지목된 강대국과 약소국의 수직적 관계가 해체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각주:8] 또한, 그것은 잘못에 대응하는 의무를 의미하지 않으며, 돈을 건내는 쪽을 도덕적으로 우위에 둔다.[각주:9] 표현 그대로 “죗값”이 아닌 것이다.

ㅤ구 제국주의 열강이 배상에 소극적인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고, 식민지를 거느렸던 국가들이 자신들한테 불리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까 우려한다는 견해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나미비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독일의 입장은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은 서남아프리카에 대한 주권을 보유했기 때문에 ― 즉, “말살명령”은 독일의 영토에서 발생한 내부 분쟁이므로 ― 이 사안을 국제법으로 판단할 수 없고, 당시에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 국제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각주:10] 그러나 이 주장은 석연치 않다. 우선, 식민지배는 그 자체로 규범인 것이 아니라 규범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실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며,[각주:11] 식민지배가 일관되고 확실한 관행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각주:12] 설령 그것을 규범으로 승인하는 확신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식민지배에 관한 국제법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럽 국가들의 관계에서 정당화되지만, 가령 독일이 서남아프리카를 선점했으므로 네덜란드는 그곳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더라도, 서남아프리카 원주민과 그들의 공동체에게까지 강제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ㅤ아마 이 같은 의문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서남아프리카 원주민 집단이 주권자로 인정받기 위한 문명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국제법의 주체로 보기 미흡했고, 따라서 그곳은 누군가의 선점을 기다리는 무주지terra nullius였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는 서사하라 사건에 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인다.[각주:13]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계속해서 의문을 낳기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문명의 기준은 무엇이며, 왜 그것에 따라야 하는가? 과거 제국주의 열강은 오늘날 피식민지의 후손들에게 그들의 국제법을 투사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에서 유럽의 전통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한 법적 관점에 불과하다.[각주:14] 사실상 기독교에 정치적 문화적 기반을 둔 유럽과 유럽적 기원을 가진 국가들로 정의된 소위 문명국civilized nation만이 국제법 주체로서 권리를 향유한다는 명제는 그들 문명의 주변부를 향한 폭력을 합리화했다.[각주:15]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 전문가위원회는 1998년에 채택한 의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자국의 민간 산업을 위해 노동력을 대규모로 징집한 것은 협약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각주:16]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껏 국제협약에 위반되는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여러 국제기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과거 자행된 인권침해 사안을 지적하고 그것의 해결을 촉구할 때마다 해당 의견에 구속력이 없다고 대응했다. 이 같은 반응은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야릇한 인상을 풍긴다. 구속력이 없다는 말의 함의는 무엇인가? 이 말은 전후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거행된 국제군사재판을 “승자의 재판”으로 보았던 추축국 국민의 현실정치에 관한 인식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규범에 의해 부과되는 구속이 없다는 법효력에 관한 인식을 반영하는가? 혹은 국제사회에서는 힘이 곧 법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양자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ㅤ우리는 어떤 법이 실재하고 유효했는지를 검토하고자 할 때 일정한 관점을 취할 것이다. 누군가는 앞서 식민지 국제법이 유효한가 혹은 실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이 자연법론과 제휴를 맺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직 자연법론만이 그러한 물음에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종래 국제법학계에서 유력하고 지배적 이론인 법실증주의가 반드시 긍정적으로 답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쪽도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트(H.L.A. Hart)는 법과 도덕을 분리함으로써 단순명료한 사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각주:17]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무엇이 실증주의적 법개념의 기준을 만족하는지를 알아내는 작업은 생각만큼 단순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국제법의 법원source of law으로는 국제협약과 국제관습법 그리고 법의 일반원칙 따위가 거론된다. 이 가운데서 국제관습법과 법의 일반원칙을 정식화하는 것은 여러 자료와 증거를 확인해야 하는 방대하고 복잡한 일이며, 그 과정을 거쳐 법률가들이 내린 결론이 다르다는 사실은 명확한 법적 명제를 얻기 어려움을 증명한다.[각주:18]

ㅤ조약은 이러한 난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따금 법률가들은 어떤 조약이 법이 되기 위한 요건을 통과했는지를 두고 이견을 보인다. 가령 그들은 일본제국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 기초가 된 한일병합조약과 관련해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그 조약이 무효이면서 부당하다고, 다른 이는 유효하지만 부당하다고, 또 다른 이는 유효하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효부당론을 주장하는 법률가들이 자연법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모종의 선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상위법이나 신앙심에 호소하지 않고 사회적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예를 들면, 조약이 체결될 당시에 비준에 필요한 절차에서 중대한 하자와 결함이 있었음을 지적하거나, 대한제국의 황제가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관성 있는 외교적 대응을 했다는 문서를 증거로 제시한다. 그들은 신정법divine laws에 어긋나는 인정법human laws은 효력이 없다는 블랙스톤(W. Blackstone)의 견해를 원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오늘날 국제법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 그런 강한 의미에서의 자연법론에 기댄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법이 국가의 동의consent를 기초로 성립한다는 견해에 따를 때 법률가는 문제시되는 조약이 진정 법인지를 판단하면서 참된 동의가 있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강압이나 위협, 속임수 혹은 중대한 결함이 있는 절차 아래에서 체결된 조약은 올바른 합의를 전제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법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러나 식민지배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다음과 같은 사례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일본제국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에 앞서 다른 열강들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가령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및 경제적으로 우월한 이해관계를 가지며, 일본 정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관리, 보호, 감독 조치를 방해받지 않는다고 규정했다.[각주:19] 확실히 체약국 사이에서는 의사의 합치consensus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합의가 그들에게 법이었어도 한국에게까지 법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가?

ㅤ단순히 한국이 체약 당사국이 아니라서 논외로 치부하기에는 해당 조약이 한국의 법적 지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일병합이 국제법상 유효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1910년 이후 한국이 독립국가로 인정되지 않았던 “국제법적 상황”을 언급한다. 그러나 생각건대 1910년 이전의 상황은 그 이후와 비교했을 때 정도의 차이였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강들 사이에서 체결된 여러 조약이 증명하듯 한국은 그 이전에도 동등하게 대우받지 않았다. 다소 거칠게 표현해서, 한국은 이익interests으로, 말하자면 역세권에 정원과 마당이 딸려 있어 상품 가치가 높은 부동산처럼 취급되었다. 이미 팔린 부동산이냐 팔리지 않은 부동산이냐의 차이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아마 그들은 다시 호소할 것이다: 국제법은 문명국을 위한 것이다. 당시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이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문명국이라는 것도 그들의 기준이다. 그들은 그들의 합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합의한 규준을 사용한다. 이러한 순환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ㅤ전술한 견해는 지나치게 비관주의적인 흐름으로 빠지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마 이 견해를 비판법학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법의 실상이 정치권력이라는 부정적 관점을 취할 것이다. 반면,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비관적인 접근 방식이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약화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가가 법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부정하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약소국에 불리하며, 강대국의 행동을 규제할 명목상의 규범조차 부재하는 사회가 도래한다.[각주:20] 하지만 국제법 체계가 권력관계에 따라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법이 있고 없음은 약소국이 처한 상황에 실질적인 차이를 가져오지 못한다. 즉, 타국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법은 존재하더라도 약소국에게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유무에 따라 각 국가의 입장이 달라진다는 비판은 그 자신이 “객관성과 중립성”이라고 표현했듯 모종의 가치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전제하지 않고서는 타당할 수 없다.

ㅤ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법이 구속력을 갖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영국-노르웨이 간의 어업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가 인정한 “집요한 반대자persistent objector”라고 일컬어지는 법리는 국제법의 구속력 근거를 국가의 의사에 의존한다.[각주:21] 그러나 단지 동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법이 그것에 동의한 국가에게만 구속력을 가진다면 별로 쓸모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강행규범jus cogens의 존재는 법의 구속력을 동의에서 찾는 견해로 설명될 수 없다.[각주:22] 하물며 신생독립국은 일반국제법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여기에 구속된다.[각주:23] 신생국은 왜 그들이 법으로 수락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국제적 관행을 준수해야 하는가? 또한, 겉보기에 동의는 철회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조약의 경우에 더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체약국은 스스로 체결한 조약으로 말미암아 자기한테 불리한 순간이 닥쳤을 때 동의를 번복하는 방식으로 발을 뺄 수 없다. 국가가 조약상 의무로부터 해방되려면 이에 관한 국제법규를 원용해야 한다: 동의를 뒤집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 합의나 관습법에 근거해 조약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다른 당사국에 통지해야 한다.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의 표준적인 예로서 조약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국가는 그들이 서로 맺은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 이 진술은 규범에 의해 부과되는 구속, 곧 의무를 전제한다. 조약은 왜 의무를 창설하는가? 조약을 구성하는 문서는 당사국의 비준에 의해 법으로 승인된다. 그들은 상호 교환한 조약문의 각 항목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것에 구속된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러한 답변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질문은 계속된다. 동의는 왜 구속력을 발생하게 하는가? 누군가는 더 근본적인 원리가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pacta sunt servanda.” 로마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이 원칙은 합의가 준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무엇이 원칙을 국제법의 일부로 만드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다시금 국가들이 그 원칙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은 순환적이다.[각주:24]

ㅤ켈젠(H. Kelsen)은 국제법의 효력이 “국가는 국가의 관행에 의해 확립된 관습을 좇아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설적인 근본규범basic norm에 의존한다고 보았다.[각주:25] 하지만 하트는 원시사회와 유사한 상태인 국제사회에서 근본규범이나 승인규칙rule of recognition처럼 법규칙의 효력을 판별해주는 기본규칙을 바라는 것이 사치라고 여겼다. 그는 국제법이 수용되고 기능할 경우에 구속력을 가지며, 켈젠이 제안한 근본규범은 일련의 규칙들이 국가에 의해 구속력 있는 규칙들로 수용된다는 사실의 쓸데없는 반복일 뿐이라고 했다.[각주:26]

ㅤ켈젠에 대한 하트의 비판은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가들이 국제법(이라고 불리는 것)을 법으로 보는 것에 수긍했기 때문에 그것이 구속력을 가진다는 하트의 주장도 결국 순환논증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용acceptance은 동의의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저명한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국제법의 구속력을 국가의 동의에서 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제국주의 팽창기에 열강들이 공유했던 식민주의 규칙의 효력에 관해 상반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다: 문명국이 동의했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식민주의 규칙의 구속력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외의 다른 요소에 근거해 규칙은 구속력을 가질 수도 있다. 즉, 나쁘게 말하면 문명국에게 “발견” 내지는 “정복”된 비문명국이 문명국의 패권에 순응해야 할 의무를 국가들의 동의에서 찾지 않더라도 정당화할 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법이 구속력을 갖는 데 국가의 동의가 불필요하다면, 그것은 문명국의 동의뿐만 아니라 비문명국의 동의도 필요 없다는 말이다.

동의론을 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우리는 더 깊고 무거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로 국제법의 권위를 지탱하는 정당성legitimacy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드워킨(R. Dworkin)은 국제법철학을 다룬 유고 논문에서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각주:27] 핵심만 짚자면, 그는 국가들이 그 자체의 정치적 정당성을 고양하기 위한 의무의 원천을 공유한다고 전제하고, 국제법체계의 원리들은 각 국가가 자국 시민에게 부과하는 강압적 체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므로 정치적 정당성을 개선하기 위한 각 국가의 일반적 의무에는 전반적인 국제법체계를 개선하려 노력해야 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각주:28] 이는 전쟁의 위법화, 집단학살의 범죄화 등 국제인권규범이 실제로 강행규범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으며, 약육강식의 섭리를 국제법의 정치도덕적 토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만 드워킨 본인이 언급했듯이 이 이론은 현대적인 면이 있다: “국제법은 1945년에 실질적으로 다시 태어났다.”[각주:29]

ㅤ1945년은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단절시킬 수 없음은 명백하다. 국제법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국제법이 뿌리를 둔 철학적 기반은 무엇인가? 국제재판에서 당사자와 관계인이 법적 논변을 정당화하려 사용하는 추상적인 원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의문을 푸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전후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역사의 법정에서 자기 변론에 무엇을 끌어들였는지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처벌할 법이 1945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며, 형벌법규의 효력을 그 법규의 제정 이전으로 소급할 수 없다는 원칙을 원용했다: nulla poena sine lege. 이 원칙은 법의 지배가 확립된 곳에서 매우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법에 기초한 정의의 실현을 표방했던 국제재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ㅤ원칙들은 무엇으로부터 오고 무엇에 의해 뒷받침되는가? 이와 관련해서 1982년 튀니지와 리비아 간의 대륙붕 사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각주:30] 당시 재판소는 공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법적 추론 과정에서 형평equity에 따랐음을 밝히면서도 그것을 ICJ규정 제38조 제2항의 “형평 및 선ex aequo et bono”과 구별했다. 이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 바는 분명했다: 그러한 구별은 재판소가 당사국의 동의를 얻어 ex aequo et bono에 의해 결정할 때는 법규칙의 엄격한 적용으로부터 해방되지만, 국제법의 일부로서 equity에는 재량과 무관하게 구속된다는 취지였다. 재판소는 형평이 법으로서 직접 적용 가능한 일반원칙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임무인 당소가 그것을 적용해야만 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형평 원칙의 발원지로 정의의 사상idea of justice을 지목했다. 확실히 이는 국가의 동의와 무관한 도덕의 요구였다.

ㅤ또한, 재판소는 실정국제법을 적용할 때 여러 가지 가능한 해석 중에서 사건의 정황에 비추어 정의의 요구사항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해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각주:31] 우리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가급적 모순이 없는 상태를 지향한다. 만일 법체계가 “체계”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라면 실효성은 물론이고 그 권위마저 의심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내용을 결정할 때는 가능한 해석 가운데서 전체 법체계에 부합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최선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각주:32] 이때 법적 원리들은 이 판결에서 드러나듯 “국제법에 따라 재판할 임무”를 지닌 국제사법재판소가 적용하는 “법의 일반원칙”으로서[각주:33] 실정법과 정치도덕을 매개한다고 볼 수 있다.

ㅤ뉘른베르크에서 재판부는 전쟁이 발발한 1939년 이전에 체결된 부전조약을 근거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각주:34] 이 판결에 대해 많은 법률가가 부전조약의 실효성을 부인하고 사후법ex post facto law에 의한 처벌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과적으로 nulla poena sine lege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원칙이 적용되었더라면 이는 심각한 남용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원칙의 효력을 지지하는 정치도덕적 토대는 개인을 존중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의무와 연관되어있는데, 그 의무를 저버리고 그것의 토대를 파괴하려 한 행위를 변호하는 데 해당 원칙을 사용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모순이기 때문이다.[각주:35]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질문을 달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 “문명국”에 의해 자행된 식민지배와 집단학살,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원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미 반세기도 훨씬 전에 결별한 제국주의의 유물을 무덤에서 꺼내지 않는 이상 정당화는 불가능할뿐더러, 그런 접근 방법은 진솔하지 못하거나, 혹은 기본적 의무를 준수하는 체하는 국가의 위선을 드러낼 것이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했어도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국제법을 가르칠 때 “과연 국제법 같은 게 실제로 있기는 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취급했다. 물론 당대에도 국제법 교재는 첫머리에서 그런 내용을 다루지만, 그 의문에 예전만큼 무게가 있지는 않다. 오늘날 법률가들 사이에서 국제법이라 이름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한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국제사회의 행위 주체들은 국경의 안과 밖을 넘어서 그들이 따라야 할 법이 있음을 인정한다. 대부분 국가는 자국의 헌법과 법률에서 국제법의 지위를 규정하고, 권리를 주장하거나 타국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국제법을 원용한다. 그러나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제법뿐만 아니라 법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법률가들은 아직도 법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찾고 있다.[각주:36]

ㅤ법을 사유하는 일은 무엇이 법인가를 전제한다. 그리고 법이 어떠한가를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각주:37] 우리가 국제법에 대해 가진 관념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지난날 제국의 학살과 폭정이 국제법의 일부였다는 관점은 그 반대에 못지않게 지지를 받고 있으며, 여전히 강대국은 법과 힘을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를 선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범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이 그 전문preamble에서 “자유와 권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는 이 서약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각주:38]고 강조하듯 각 국가는 그들의 기본적 의무를 인식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원리들은 보다 큰 “도덕적 중력”[각주:39]을 갖게 되었다.

ㅤ광복光復을 이루고 수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피해자들은 빛을 되찾게 될 그날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과 제국의 망령이 떠도는 현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공포감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한다. 종종 드리우는 먹구름만큼이나 낙관주의의 입지는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비관만 해서는 안 된다. 명랑함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지적인 책임도 낙관주의를 지지하게끔 한다.[각주:40] “법의 세계”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과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그 원동력은 참다운 법이란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결연한 믿음이다. 우리는 평화와 공존, 인류애를 향한 확신에 가득 찬 용기를 고수해야 한다. 그것은 고귀한 신념이며, 오직 낙관주의만이 이를 지킬 수 있다.

 

Mar 22, 2023

 

*대표이미지 출처: Wikimeida Commons

  1. 한지훈ㆍ이동환, “尹대통령 "징용해법 발표는 미래지향적 결단…한일관계 새 시대",” 연합뉴스 (2023년 3월 6일). 참조: 김효정ㆍ오수진, “한국 재단이 징용 배상 "한일관계 위한 결단"…피해자는 '반발',”연합뉴스 (2023년 3월 6일) [본문으로]
  2. 김회승, “우리 기업이 돈 내는 강제동원 배상안…자발적으로 내라?,” 한겨레 (2023년 3월 7일), 3면 1단. 이 문제는 기업의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국가이익에 봉사할 법적 의무가 없다. 또한, 기업이 자금을 출연하면 경영진은 배임죄로 처벌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박준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은 불법? 돈 낸 기업은 배임?... 법조계 의견 들어보니,” 한국일보 (2023년 3월 7일), 2면 1단; 김혜리ㆍ이혜리,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 개입부터 ‘법적 무리수’,” 경향신문 (2023년 3월 6일), A4면 1단을 참조. 윤석열 행정부가 기업에게 자금을 출연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도 재산권 침해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헌재 2016헌나1; 판례집 29-1, 1<39> [본문으로]
  3.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 공2012하, 1084 [본문으로]
  4. 제헌헌법은 전문前文에서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현행 헌법 역시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내적 인식을 토대로 성립한다. 다른 국가의 사례로, 가령 미국을 예로 든다면 건국이념을 담은 독립선언서가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5. 이재승, “법조인소송,” 일감법학 (no.44, 2019), 160면 [본문으로]
  6. Max Fisher, “The Long Road Ahead for Colonial Reparations,” The New York Times (Aug 27, 2022) [본문으로]
  7. 독일제국은 1904년부터 1908년까지 서남아프라카에서 제국의 통치에 반발해 봉기한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했다. 이 학살로 헤레로족 인구는 80%가 줄었고, 나미족은 절반이 몰살당했다. 생존자들은 기아와 질병에 방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용소에 갇혀 비인도적 처우와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잔혹하고 엽기적인 생체실험에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8. Emsie Erastus, “Viewpoint: Why Germany's Namibia genocide apology is not enough,” BBC (June 1, 2021). 한편, 독일-나미비아 정부 간 협상안에 대해 피해자의 후손들은 제대로 된 배상이 아니라며 반대했는데, 현재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닮은 점이 여러모로 씁쓸하다. 조기원, “독일, 1조5천억원으로 학살 사과…나미비아 “우리 존재에 대한 모욕”,” 한겨레 (2021년 6월 1일), 14면 1단 [본문으로]
  9. 이는 독일의 역사가 치머러Jürgen Zimmerer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다. Gernot Heller, „Historiker: "Man kann einen Genozid nicht wiedergutmachen",“ Passauer Neue Presse (May 29, 2021) [본문으로]
  10. Matthias Goldmann, „‚Ich bin Ihr Freund und Kapitän‘. Die deutsch-namibische Entschädigungsfrage im Spiegel intertemporaler und interkultureller Völkerrechtskonzepte“. Max Planck Institute for Comparative Public Law and International Law Research Paper No. 2020-29 (Aug 2020), S.3 [본문으로]
  11. 황병하 판사는 힘으로 다른 나라를 합병하는 문제가 약육강식의 사실 문제일 뿐, 규범의 영역이 아니므로 그것이 국제법상 불법인지를 따지는 것은 난센스nansense라고 말한 바 있다. 유설희, “"식민지배를 국제법상 불법 여부 따지는 건 난센스",” 경향신문 (2021년 6월 10일), A10면 1단. 그러나 식민지배가 사실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불법성을 밝히는 일이 허황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상하다. 일국이 타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은 사건이며 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가 이 사안에서 사실(현상)과 당위(가치)를 구분한 것은 의의가 있다. 종종 학자들도 양자를 혼동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했다는 전제로부터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그것이 옳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 추론이다. [본문으로]
  12. Matthias Goldmann, “Why the Key to the Past Lies in the Future,” Verfassungsblog (Aug 20, 2020) [본문으로]
  13. 국제사법재판소는 스페인이 식민지배를 할 당시 서부 사하라가 terra nullius였는지를 자문한 UN총회의 질의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negative)”라고 답변했다. 재판소는 식민지화 당시 서부 사하라에는 비록 유목민이긴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으로 조직된 부족과 그들을 대표하는 족장이 살고 있었고, 또한 스페인이 무주지의 법리를 원용하지 않고 그곳 토착민과 보호조약을 체결했던 사실을 지적했다. Western Sahara, Advisory Opinion, I.C.J. Reports 1975, p.12, para.82 [본문으로]
  14. Matthias Goldmann, supra note 12 [본문으로]
  15. 이재승, “식민주의와 법학,” 민주법학 (no.45, 2011), 17-19면을 보라. [본문으로]
  16. Report of the 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s and Recommendations, Report Ⅲ (Part 1A), published 87th ILC session (1999), p.130, para.12: “The Committee considers that the massive conscription of labour to work for private industry in Japan under such deplorable conditions was a violation of the Convention.” See Observation (CEACR) - adopted 1998, published 87th ILC session (1999) [본문으로]
  17. H.L.A. Hart, “Positivism and the Separation of Law and Morals,” Harvard Law Review (vol.71, no.4, 1958), p.620 [본문으로]
  18. Ulrich Fastenrath, “Relative Normativity in International Law,”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4, no.3, 1993), p.316 [본문으로]
  19. Article 2, Treaty of Porthmouth [본문으로]
  20. 오시진, “국제법상 법실증주의에 대한 소고,” 국제법학회논총 (vol.62, no.4, 2017), 125면 [본문으로]
  21. Fisheries case, Judgment of December 18th, 1951: I.C.J. Report 1951, p.116 [본문으로]
  22. 金奭賢, “國際法學에 있어서 意思主義와 客觀主義의 對立,” 국제법학회논총 (vol.54, no.2, 2009), 52면 [본문으로]
  23. H.L.A. Hart. The Concept of Law (Oxford University Press, 2ed, 1994), p.226. 하트는 국제적 의무가 당사자의 동의에서 발생한다는 주장에 두 가지 예외가 있음을 지적하는데, 하나는 신생독립국의 출현 사례고, 다른 하나는 내륙국이 연안을 새로운 영토로 취득하는 사례다. 이 경우 내륙국은 당연하게도 해양법이 형성되는 과정에 의사를 표현할 일이 없었을 터지만,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하면 해양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본문으로]
  24. Ronald Dworkin, “A New Philosophy for International Law,” Philosophy & Public Affairs (vol.41, no.1, 2013), p.10 [본문으로]
  25. Hans Kelsen.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New York: Rinehart & Company, 1952), p.367: “states ought to behave according to custom established by the practice of states” [본문으로]
  26. H.L.A. Hart, supra note 23, pp.235-236. 즉, 국제법은 내적 관점internal point of view에서 받아들여지므로 구속력을 갖는데, 이는 승인규칙이 그 구속력을 수용acceptance에 의존하는 것과 동일하다. See H.L.A. Hart, supra note 23, p.50ff [본문으로]
  27. See Ronald Dworkin, “A New Philosophy for International Law,” supra note 24, pp.2-30 [본문으로]
  28. Ronald Dworkin, supra note 24, pp.16-17 [본문으로]
  29. Ronald Dworkin, supra note 24, p.29 [본문으로]
  30. Continental Shelf (Tunisia/Libyan Arab Jamahiriya), Judgment, I.C.J. Reports 1982, p.60, para.71 [본문으로]
  31. Judgment supra note 34: “Moreover, when applying positive international law, a court may choose among several possible interpretations of the law the on which appears, in the light of the circumstances of the case, to be closest to the requirements of justice.” [본문으로]
  32. See Ronald Dworkin. Law’s Empire (Havard University Press, 1986), p.225ff [본문으로]
  33. Art.38, Para.1, Item ⒞, of th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본문으로]
  34.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Nuremberg) Judgment of 1 October 1946, p.52 [본문으로]
  35. “국가범죄에 대하여 죄형법정주의를 운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보장을 위한 법치국가의 근본전제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권력범죄자를 비호하는 논리로 흐른다.” 이재승, “라드르루흐 공식,” 법철학연구 (vol.7, no.1, 2004), 114면 [본문으로]
  36. Immanuel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Leipzig: Felix Meiner Verlag, 1919), p.613 [본문으로]
  37. Ronald Dworkin. Freedom’s Law (Harvard University Press, 1996), p.38 [본문으로]
  38. Se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 “Whereas a common understanding of these rights and freedoms is of the greatest importance for the full realization of this pledge …” [본문으로]
  39. Ronald Dworkin, supra note 24, p.20 [본문으로]
  40. Ronald Dworkin, supra note37, p.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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