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헌법 관념의 정치적 혼동과 타락을 가져오고 있다.
ㅤ이틀 전, 국회는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71면 분량의 탄핵소추의결서는 작년 10월 1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와 관련해 그가 주무 부처의 장관으로서 필요한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과 이후 국정조사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사실을 탄핵의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과거 대통령을 대상으로 진행된 두 건의 탄핵심판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탄핵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2개월에서 3개월 내외로 예상된다. 법률가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점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확실히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는 원칙적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며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아 이에 대해 판단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두 번째 탄핵사유, 곧 청문회에서 이상민 장관이 했던 거짓말은 중요한 쟁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거짓된 행동은 1974년 미국에서 닉슨 1(Richard Nixon)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혐의가 바로 위증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ㅤ한편 탄핵소추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또 다른 정치적 사건이었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을 두고 “의회주의를 포기한 것”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직책과 이름에 관한 정보 없이 단지 “관계자”라고 소개된 대통령실의 어떤 직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무위원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중대 위반했을 때 추진하는 것인데 어떤 헌법, 법률을 중대 위반했는지 아직 드러난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삼권분립의 한 축에서 헌법, 법률에 따라 국정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한 축에서 이걸 잘 잡아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인 “의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용어의 진정한 의미와 용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실의 반응에 다소 기이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
ㅤ의회주의란 무엇인가? 원래 의회주의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구별하여 내각책임제 정부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보다 넓은 의미에서 의회정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의회주의를 “민주적인 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국회에서 다수결로 국회의 중요정책을 결정하고 입법을 행하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 개념에 더 많은 것을 포함하기를 바라는데, 가령 숙의 3deliberation의 이점을 살린 심의 절차나 입법자의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이념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의회주의에 대한 적절하고 건전한 관념들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제도권 정치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고 중요한 입법이나 정책이 궁극적으로 국회에 의해 승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ㅤ이 같은 정의에 따를 때 대통령실의 비판은 이치에 닿게 올바르다고 볼 수 있는가? 정황상 대통령실의 말이 겨냥하고 있는 상대는 이번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야당이 의회주의를 포기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당대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이 헌법을 무시한 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했다”며 민주당의 행위를 “입법 독재”로 규정했다. 또한, 앞서 본 것처럼 대통령실 관계자는 “장관이 어떤 헌법, 법률을 중대 위반했는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은 장관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지 않았는데도 민주당이 장관을 탄핵한 것은 잘못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의회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확실히 헌법은 탄핵소추의 사유를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야당이 의회주의를 포기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부적절하다. 오히려 그 주장은 선결문제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4
ㅤ대통령실은 삼권분립의 “다른 한 축”, 곧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해주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민 장관에게 잘못이 없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장관의 직무수행에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이 있었는지는 전제가 아니라 쟁점이다. 탄핵소추는 그 쟁점을 가리기 위해서 제안된 것이다. 탄핵소추의 주체가 국회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회는 국무위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어떤 위법이나 속임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단지 야당이 주도했기 때문에 의회주의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를테면, 지난해 4월경 민주당이 검사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때와 달리 이상민 장관을 탄핵하는 과정에서 그런 논란이 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무고한 장관을 탄핵하려 야당이 권한을 남용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이상민 장관이 법적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고 있으며,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국회에서 거짓된 증언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5
ㅤ대통령실은 의회주의라는 개념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그것을 정치적으로 소비했다. 국회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밟아 장관을 탄핵한 것은 심각한 결함이 없는 이상 의회주의와 어긋나지 않는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았다거나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 종속되었다거나 국회가 헌법을 초월해서 권한을 행사했다거나 회의가 폭력과 무질서로 얼룩졌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면 국회가 스스로 의회주의를 포기했다는 주장은 참일 수 없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다수가 너무 위협적일 정도로 많다는 사실은 의석수가 부족한 소수에게 불리한 사정이지만, 대체로 어느 민주주의 국가든 하나의 정당 또는 정치세력이 의회에서 과반의 의석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민주정치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며 민주주의와 상치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수결을 뒷받침하는 공정성, 즉 소수에게 국회의 의사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되었는지에 달려있다. 여당은 심의의 기회를 빼앗기지 않았으며 표결권도 침해받지 않았다.
ㅤ따라서 의회주의 포기라는 선언은 근거가 없을뿐더러 지극히 정파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헌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남용이 초래할 해악을 포함하고 있다. 일례로 대통령은 취임 후 일관되게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것의 실제 쓰임은 대통령실이 야당을 비난하기 위해 의회주의를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였다. 본래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념이자 원리다. 그런데 오늘날 법치주의는 정치구호에 활용되면서 그것에 대한 사회 일반의 관념은 마치 “국민이 법을 준수하는 것” 또는 “국민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과거 이 땅에서는 무수한 국가폭력이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군부정권 시절 법은 반대자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지배층이 시민을 억압하는 데 동원하는 테러 지배의 도구였다. 하지만 여전히 위정자들은 어두운 과거의 반성과 교훈을 뒤로한 채 선량한 시민들을 길들이고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게끔 만드는 데 법치주의라는 낱말을 쓰고 있다.
ㅤ이것은 대통령실의 말이 그저 야당을 겨냥한 것이라고 짚어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용어의 분별 없는 사용이 가져올 혼동과 타락은 경계할 만한 일이다. 정치인들은 항상 헌법에서 자신의 권위를 찾으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언제나 시민을 위해 존재했지, 권력자를 위해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암울하게도 일부 정치인들은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헌법을 향한 우리의 신뢰와 올바른 이해가 권력의 속삭임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Feb 10, 2023
*대표이미지 출처: 대한민국국회
- 헌재 2017. 3. 10. 2016헌나1; 판례집 29-1, 1<46> [본문으로]
- 김동하, “이상민 탄핵안 가결·직무정지... 대통령실 “野, 의회주의 포기”,” 조선일보 (2023년 2월 8일) [본문으로]
- 헌재 2016. 5. 26. 2015헌라1; 판례집 28-1하, 170<210> [본문으로]
- 김연정, 김철선, “정진석 “민주, 헌법 무시하고 이상민 탄핵…의회주의 파괴정당”,” 연합뉴스 (2023년 2월 9일) [본문으로]
- 강경석, “민주, 탈당 민형배로 안건조정위 무력화… 8분만에 법사위 표결,” 동아일보 (2022년 4월 27일), A3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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