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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상

한정위헌 결정의 이론적 문제

by Hershel Layton 2023. 4. 7.

ㅤ헌법재판소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하면서 이따금 단순위헌이 아닌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위헌결정은 “법 제1조는 헌법에 위반된다”와 같이 법률조문 전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법 제1조 중 ~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처럼 법률조문 일부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한정위헌은 “법 제1조를 ~라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형식으로 주문에 표현된다. 통상 학자들은 일부위헌과 한정위헌을 구분하고 전자를 양적 일부위헌으로, 후자를 질적 일부위헌으로 명명한다. 대법원은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한다는 이유에서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각주:1] 반면,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결정도 다른 위헌결정과 마찬가지로 기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각주:2] 그러므로 양자는 법해석에 관한 차이를 드러낼 때마다 서로 충돌한다.

ㅤ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결정도 규범통제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그 논변의 전제는, 요컨대 법의 진정한 의미란 개별화 구체화된 법해석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므로 「법」과 「법해석」을 준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각주:3] 이에 따르면, 규범통제의 대상인, 재판의 전제가 된 「법」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법」이 아니라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법」이다. 헌법재판소는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법」에 대한 규범통제를 옹호하기 위해 「법」과 「법해석」의 준별이 법실증주의적 개념법학의 몰락과 함께 폐기된 역사적 유물이라고 비판한다.[각주:4] 하지만 개념법학을 향한 공격은 과연 헌법재판소가 관철하려 하는 규범통제의 정당성에 호응하는지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오직 헌법재판소만이 법실증주의적-개념법학적 사법모델을 거부한다거나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목적론적 법해석을 지향한다고 말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법원도 창조적인 법해석을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법실증주의적 개념법학을 겨냥한 비판의 견지에서 「법」과 「법해석」의 준별을 거부한 것은 한정위헌 결정이 법원의 재판에 대한 통제라는 주장에 맞서 자신의 권한을 정당화하려는 차원에 머물러있을 뿐이다.[각주:5]

ㅤ한 연구는 한정위헌을 이른바 “질적 일부위헌”으로 파악한 종래의 학설을 반대하고 한정위헌의 본질이 “양적 일부위헌”이라고 주장한다.[각주:6] 다시 말해, 한정위헌 결정은 “~라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표현된 그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은 양적 일부위헌이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는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하려면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선고할 때 일부위헌의 주문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제안이 수용된 것일까? 근래 헌법재판소는 전략적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을 대상으로 한 위헌결정에서, 2016년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주문을 표시한 반면,[각주:7] 2022년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 가운데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표시했다.[각주:8]

 

심판대상조항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2016년 한정위헌 결정 2022년 단순위헌 결정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 가운데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ㅤ양적 일부위헌으로서 한정위헌 결정의 이론적 전제는 「법」과 「법해석」의 관계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전제를 기초로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법」에 대한 규범통제를 옹호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전술했듯 법은 해석에 의해서 비로소 그 의미와 내용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법은 해석 이전에 이미 완결된 의미를 보유한 것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그 의미와 내용이 채워지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법」이 해석의 대상인 법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법관)의 상호작용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즉, 법은 스스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에 의해 해석된다. 법의 의미와 내용은 해석자에 따라 다르게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이 규범의 범주에 포섭되는지 아닌지 역시 해석자의 해석에 의해서 확인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확정한 규범의 경계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우선 다음 두 개의 사례를 살펴보자.

 

  • [사례A] 대법원은 형법 제129조 제1항의 “공무원”에 “구 제주특별법 제299조 제1항에 따른 통합평가심의위원회 위촉위원(이하 위촉위원)”이 포함된다고 해석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129조 제1항의 “공무원” 중 “위촉위원”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다.
  • [사례B]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 중 “사죄광고”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지만, 대법원은 우리 법제하에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ㅤ사례(A)의 경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모두 형법 제129조 제1항의 “공무원”에 “위촉위원”이 포함된다는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의 존재를 인정한다. 다만, 그렇게 확인된 법률의 부분, 곧 “공무원” 중 “위촉위원”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는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사례(B)에서는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의 내용 자체가 상이하다.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가 포함된다는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이 있다고 잠정적으로 전제하지만, 대법원은 처음부터 “사죄광고”를 법률의 내용에서 배제한다. 즉, 헌법재판소는 “명예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죄광고를 명할 수 있다”는 규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위헌이라고 선언하지만, 대법원은 사죄광고를 우리 법제하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그런 규범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만일 사례(B)에서 한정위헌을 구하는 취지의 청구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대법원의 관점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는 법」 내지는 「법이 아닌 것」에 대해 위헌을 선언한 셈이 된다. 이제 다음 사례를 보자.

 

  • [사례C]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는가? 대법원은 그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반면,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ㅤ사례(C)는 사례(A)처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법해석에 관해 이견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의 내용이 「대법원의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의 내용보다 범위가 넓다는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결정할 수 있는지다. 해석으로 구체화된 법률의 내용(규범세계)에서 위헌적인 부분(부분규범)을 배제하는 것이 한정위헌 결정의 본질이라는 견지에서는 법률의 내용을 축소하는 한정위헌 결정만 가능할 뿐, 그것을 확장하는 결정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하는 순간 법률의 내용은 확장된다. 양적 일부위헌의 주문 형식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법률의 내용을 결정짓는 지평을 좁게 설정함으로써 초래되는 기본권 침해를 막기 곤란하다.

ㅤ실제로 관련 사건을 다룬 결정에서 위헌의견에 가담한 재판관들은 “처벌조항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주문의 형식으로 이 난점을 극복하고자 했다.[각주:9]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공정한(혹은 정당한) 법해석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의문을 남긴다. 가령 병역법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은 해당 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한다. 왜냐하면,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는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라고 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될 수 있는지는 헌법에 합치되는 법해석이란 무엇인가를 논할 때 충분히 가치 있는 쟁점이 될 수 있다. 한데 앞의 위헌의견은 그 쟁점과 관련한 논의를 생략한 채 병역법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벌받는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헌법합치적-목적론적 법해석의 가능성을 외면한다.

ㅤ지금까지 살펴본 바는 한정위헌 결정을 뒷받침하는 논변의 편협함을 보여준다. 법은 해석자에 의해 해석된다. 해석자 없는 법해석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해석자가 여럿 있을 때는 당연히 누구의 법해석을 우선해야 하는지가 문제시된다. 헌법재판소의 논변은, 다소 거칠게 말해서 스스로가 법해석에 관하여 정답을 알고 있다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답을 알고 있다거나 헌법재판소의 법해석이 대법원의 법해석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는 없다. 결과적으로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의문은 법해석에 관한 최종적인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로 귀결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원적인 사법구조의 신비로움을 해명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든다. 따라서 과제는 한정위헌 결정을 소재로 길고 복잡한 프톨레마이오스적 주전원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각 기관에 부여한 권한을 규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Jan 21, 2023

 

*대표이미지 출처: 출처

  1. 대법원 1996. 4. 9. 선고 95누11405 판결, 공1996. 5. 15. (10), 1442; 대법원 2001. 4. 27. 선고 95재다14 판결, 공2001. 6. 15. (132), 1220 [본문으로]
  2. 헌재 1997. 12. 24. 96헌마172 등, 판례집 9-2, 842<860>; 헌재 2022. 6. 30. 2014헌마760 등, 판례집 34-1, 604<613> [본문으로]
  3. 헌재 2012. 12. 27. 2011헌바117, 공보 195, 104<108> [본문으로]
  4. 헌재 결정(주2); 공보 195, 104<108> [본문으로]
  5. 임미원, “형법상 뇌물죄규정에 대한 헌재 한정위헌결정의 기초적 고찰,” 법철학연구 (vol.16, no.1, 2013), 160-161면. [본문으로]
  6. 이재홍, “한정위헌결정의 종말? -최신 결정례를 계기로 살펴본 한정위헌의 본질: 양적 일부위헌-,” 법학연구 (vol.30, no.1, 2019), 229-278면 [본문으로]
  7. 헌재 2016. 4. 28. 2016헌마33 [본문으로]
  8. 헌재 2022. 6. 30. 2014헌마760 등; 판례집 34-1, 604 [본문으로]
  9. 헌재 2018. 6. 28. 2011헌바379 등; 판례집 30-1하, 370<4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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